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남녀가 같지 않으며,

나이의 많고 적음이 다르며,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이 다르다.

인간의 평등은 오직 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간사회에서는 극히 일부분만으로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평등하지 않다"라는 명제만으로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평등하지 않으며,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가 맞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조건이 같아야 한다는 뜻과 같은 것이 아닐까...

파시즘이나 나치즘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존재를 인정치 아니한다.
그러므로 학살의 정당성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가 평등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해야만 한다.

남녀가 인간임이 같아도 생체적인 다름을 인정해야만한다.
남녀가 절대적으로 같아야만 한다는 것은 신에게 따져야 할 문제이다.

신이 다르게 만들었기에...

나라의 정책 또한 국민의 다름을 인정해야 올바른 정책을 행할 수가 있다.

내가 걸을 수 있다고 해서
다른 걷지 못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다면,
장애우를 위한 정책이 나올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이 남자와 달리 출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쌍둥이도 성격과 행동이 다른데,
인간 모두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평등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고, 참세상일 것이다.

땡보, 진짜 편한 군생활 공개(땡보특집1부)
http://link.allblog.net/18951323/http://normalog.com/108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댓글에 나와 똑같이 방포에서 근무한 경우도 있고 해서리 내 군대생활을
적어봐야겠다.

1994년 대학 진학 후,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우리 동아리는 유독 공군이 많았다.
그리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현역 선배들을 보며,
공군은 정말로 편한 곳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도 공군사병 출신이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까...

어쨌든, 자주 나오는 것 만큼 부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때는 휴가 나왔던 선배가 너무나 오래 안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2번째 휴가였다. (공군은 외박이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공군고시(공군에 들어가려면 시험봐야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떨어진 사람도 있다.)를 보고 1995년 3월부터 나의 군대 생할은 시작되었었다.

공군은 대부분 편하다고 알고 있더랬다...

나의 주특기는 보급이었고, 공군중에서도 괜찮은 보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군중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방공포로 배정 받았다.

공군은 보통 집과 가까운 곳에 지원하고 대부분 그렇게 가게 되는데,
난 뭐가 문제였는지... 경기도 안양에 사는 내가 부산근처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방공포는 육군에서 1991년도에 공군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당시만 하더라도 육군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육군때에는 땡보직이었다는데... 공군에게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산밑 대대에서 대기 하고 있을때, 내가 갈 부대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기 일쑤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하여, 5월부터 나의 부대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는데, 행정반에는 난로가 따끈하게 주전자를 데우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추운것 보다는 구름속에 갖혀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습기가 많아 어쩔수 없이 난로를 피워야 했다.

그곳에서 나의 정식 보직은 유류보급병(3종).
업무적으로만 봤을때 그만한 땡보직은 없었을 것이다.
기름 재고 관리하고, 가끔 휘발유로 경유드럼 닦아주고...(참고로 우리부대는 기름이 모두 드럼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총 부대원 70여명이 고작인 곳에서 땡보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비행단 공군은 보초를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곳은 누구라도 상관없이 주간 2시간, 야간 2시간씩 하루 총 4시간을 근무서야 했다.

게다가 그 수많은 작업들
특히, 여름에는 비바람에 폐여버린 도로를 평탄화하는 도로평탄화작업을 꼬박꼬박 해야만 했다. 도로길이는 굽이굽이 11Km... 힘들지만 안할 수 없는 이유는 부식차가 못올라오면 우린 꼼짝 없이 반찬없는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그 작업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특히나 태풍이 올 때면 땅이 많이 폐이지 않도록 물길도 작업 해줘야 했다.

그러고 보면,
겨울은 딱히 작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눈이 무진장 많이 와서 왕창 쌓일 것 같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은 2번 정도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완전히 산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에 대부분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산 정상은 수도도 들어오지 않아서 부대 안에 있는 우물 2곳을 번갈아가며, 펌프로 끌어 올렸었다. 그 물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다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겨울즈음에는 우물이 말라 대대에서 물차가 와야 씻기라도 할 수 있었다.

우물이 마를 즈음에는 일단 샤워가 금지된다.
2단계로 접어들면, 빨래가 금지된다. 이때는 빨래거리를 모아서 대대에 가서 빨아와야 했다.
3단계는 세수금지.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밥을 할 수는 물만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 3단계까지 갈때 연병장에 살며시 쌓여 있는 눈을 절대로 밟아서는 안되었다.
눈 모아서 잘 녹여 씻었어야 했으므로....
밟은 눈은 흙이 들어가서 안된다...

내가 있던 방공포 부대는 부대원 전부가 돌아가면서 2주간 5분대기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싸이렌 5번 울리면 5분내로 단독군장하고 해당 장소에 집합해야 하는 것으로 야간에도 출동할 수 있으므로 보초근무가 아닌 불침번을 서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물론 부대 정찰을 하기 위해서 철조망 주위를 도는데, 그때 삽을 가지고 나가 진지를 보수해야 하는 임무도 있었다...

나는 재수없게도 검열조에 들어가서리... 3~4개월에 한번 할까 말까하는 5분대기조를 6개월을 해야만 했었다...서류상은 다른 부대원이었지만, 훈련과 검열은 내가 뛰어야 하는...-.-;;;

그런 방공포였지만.... 거의 독립부대다 시피하기 때문에 낭만(?)도 꽤 있었드랬다.
상급부대에서 갑자기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산정상까지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대비 하는데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여름, 가을 보양식은 뱀.
특히, 가을뱀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먹을 것을 많이 먹었는지 살이 꽤 많다.
머리를 자르고, 그 끝 부분을 쫙 잡아 당기면 한번에 껍질이 벗겨지고, 통통한 살만이 남는다.
그것을 통마늘을 왕창 넣고, 주전자에 넣어 4~6시간 끓이면 살은 다 분해되고 뼈만 남게 되는데, 그 물을 한잔씩 마셨었다... 그것도 몰래 하지 않으면 간부나 고참들이 빼서 먹기 때문에 몰래 먹어야 한다.
위에 얘기했다 시피, 내가 있던 부대는 1년 내내 난로를 가동하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

가끔 추석연휴에는 오전 8시 기상, 오전 10시 취침 점호 이런것도 했더랬다.
산꼭대기 부대의 휴일은 당직사관이 왕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군대 생활이 힘이 들긴했지만, 참 재미있기도 했던 때였다.
다시 돌아가라며 절대 안가지만....^^

ps) 혹시, 등산 등으로 산에 올라가다가 "지뢰"라는 표시가 있다면, 진짜 지뢰가 있는 곳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원래 매설되어 있던 자리에서 이동하게 되는데, 처음 매설했던 시기가 대부분 전쟁직후가 많아서 "지뢰" 표시를 본 그 자리 부근에 지뢰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방이라고 해서 무슨 지뢰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간혹 실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구요... 저희 부대 주변에도 지뢰가 매설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덮고 있던 흙이 쓸려 내려가서 그냥 눈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구요... 게중에 한 개는 저희 부대장이 터트려 보기도 했습니다. 진짜 되나 안되나 해보건데, 터지더군요...-.-;; 그러니까, 제발 "지뢰"라는 표시가 있는 곳은 절대 가시면 안됩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당신이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론,
당신의 행동이 멋져 보일때도 있습니다.
때론,
당신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습니다.

당신과 친구가 되기를 바랬던 적도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얘기하지 않았기에
당신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당신에게 다가가기 어려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당신 또한 당신이
가치 있는 사람인지 모를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고통을 얘기해 준적이 없어
난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당신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느껴집니다.

힘든 당신 역시 당신 자신이기에
당신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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