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드는 건 아주 옛날 일 같다.
우리가 보기엔 중국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플것 같은데, 왜 중국은 매번 북한의 편을 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차근차근 생각해 본봐....
중국은 이미 북한을 자기네 영토로 여길 경우, 모든 의구심이 풀리는 듯 했다.
북한이 중국의 자치지구라 가정하였을 경우
북한의 자의적인 행동은 어떠한 행동이라도 중국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을들고 안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네 나라의 일이 되기 때문에
한사코 북한의 편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북한은 중국의 자치지구가 아니다...
허나, 김정일이 자신과 김정은의 보장된 삶을 원하고, 스스로 북한을 유지할 힘이 약하다고 느껴졌을 경우 중국에게 북한을 넘겨줄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북한의 고위층의 입장에서도 북한이 그대로 무너져 남한에 흡수된다면,
그들이 평생을 일궈온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중국의 자치지구가 될 경우, 그들은 자치지구를 총괄관리할 수 있는 직책에 맡겨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 되는 것이다.

중국입장에서도 자신의 나라의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들어나는 형태는 북한을 감싸는 중국으로 보이겠지만,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서 중국이 김정일에 대한 태도와 중국방문의 밝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보면,

북한의 중국영토화는 이미 진행중인 단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이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1,000년전 이미 그러한 일이 있었고, 역사는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

천자의 개인적인 잡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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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생 [淵男生, 634~679]
 
[출처] 연남생 [淵男生 ] | 네이버 백과사전

자 원덕(). 연개소문()의 장남. 9세에 음보()로 중리소형(), 후에 중리대형()이 되어 국정을 맡고 중리위두대형()에 승진하였다. 665년(보장왕 24) 연개소문이 죽자 대를 이어 막리지()가 되어 삼군대장군()을 겸하고, 후에 대막리지에 올랐다.

두 아우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전국의 성()을 순시하러 떠난 사이에 형제간을 이간시키려는 무고()를 믿은 두 아우에 의하여 왕명으로 소환당하였으나 불응하자, 아우인 남건이 형의 아들인 조카 헌충()을 죽이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보내어 공격하자 국내성(:지금의 )으로 피신, 거란[]·말갈()과 결탁하는 한편,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당나라에서는 헌성을 우무위장군()에 임명하고, 장군 계필하력()을 파견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하였다. 남생은 당나라의 특진요동대도독() 겸 평양주행군대총관()·지절안무대사(使) ·현도군공()에 임명되고, 가물성() 등 여러 성을 들어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667년(보장왕 26) 당나라 조정에 소환되었다가 이적()과 함께 당나라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고, 이듬해에 신라군과 연합하여 평양성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후 우위대장군()·변국공()에 승진하였다. 남생의 묘()는 아우 남산()의 묘지와 함께 중국 뤄양[] 남쪽에서 발견되었는데, 지석()에는 관직() ·품계, 조상에 관한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동생 남건, 남산은 왕, 충신들과 함께 당나라로 붙잡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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